temps

제목[아름다운 경치의 둔황] 실크로드 양관의 눈2019-11-24 22:18:29
작성자 Level 10

 


양관은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곳이다, 양관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게 하는 곳이다.


 


양관은 중국 고대 육로의 대외 교통이 쉬는 곳으로 실크로드 남로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간쑤성 둔황시 서남쪽에 있는 골동품탄 부근이다. 서한치관은 옥문관지남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옥문관과 함께 당시 서역 교통의 길목이었다.


 


남으로 건너가는 나그네에게 양관에 눈이 내리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기적과도 같다. 양관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왕유의 위성곡 한 곡 때문이다.

 “읍성에 아침 비 촉촉하니 먼지 하나 없이, 객사의 버드나무 더욱더 푸른데, 그대여, 이 내 술 잔 비우고 가시구려, 먼 서역 길 나서면 아는 이도 드무니.”

 


사람들이 양관을 못 잊는 이유는 양관은 오랜 역사문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양관은 한무제 때 '열사군'에서 시작되었는데, 양관에 의하면 오쿠리못과 시토구는 가장 큰 독립수원이다.

적어도 3-4천 년 전에 이곳은 이미 오아시스 분지가 되어 발달된 도랑 문화가 있다.

 


일찍이 기원전 121, 서한 왕조는 흉노의 변방에 대한 소요에 저항하기 위해 서역을 운영하면서

하서 회랑에 무위, 장첩, 주천, 둔황 4군을 설치하고 양관과 옥문관을 함께 만들었다.


 


양관은 한원봉 4년 가량인 107년 도위를 두어 군무를 관리하다가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남녘 길까지의 필수 관문이었다.

 

 


서한 이래 많은 왕조가 이곳을 군사적 요충지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고, 얼마나 많은 장병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장사꾼들이나 승려, 사신, 여행객이 이곳에서 검증을 받았는가?

또 얼마나 많은 문인 소객이 양관을 마주하고 만천을 감탄하며 불후의 시를 썼는가?

고승 현유는 인도에서 불경을 배워 귀국하였는데, 바로 사로 남도를 거쳐 동입양관에서 장안으로 돌아왔다.


한당 때, 양관 군사는 바로 이 물을 이용하여 성장하였다. 서토류는 평소에는 상류가 메마르고 하류에는 샘물이 모여 물계로 북류하고, 때론 산의 홍수가 난다.

한 차례 홍수가 지나간 후, 개울이 무너져 내리고, 강바닥이 넓어지며, 많은 진흙과 모래가 흘러내려 마침내 하류에 가라앉았다.


 

수당 때 폐기된 후 점차 황폐해져 '양관이목'이라 불리는 돈돈산 봉수만이 대막고벽 위에 세워졌다.



 

양관 관광 지구가 망망한 눈으로 뒤덮인 환경에서 양관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상서로운 느낌이다.



 


고대 군사의 성으로 병영이 뚜렷이 보인다.

옛 모습을 본뜬 이색 건축물은 고대의 정전 장면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날이 저물고 눈이 채문에 내려 바람을 쐬어 붉은 깃발이 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