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 회랑의 서쪽의 제일 끝에 위치해 있는 이 곳,
전 세계가 탐내는 한 황홀한 고성이 있는데
그 고성의 이름은 바로 둔황이다.
여러분이 모두 익히 알고 있는 그 시편들은
모두 둔황에 관한 이야기인데, 한번 소개해볼까요?
북쪽으로 뻗은 오래된 변방의 성, 석양 아래 황량한 소나무가 있는 인적 드문 이 곳,
이 변방의 시 한 수는 사막과 고비에 들어섰다.
“북쪽으로 뻗은
오래된 변방의 성, 석양 아래 황량한 소나무가 있는 인적 드문 이 곳”
은 명나라 정거정의 《홍무계해공사회령북경》으로, 둔황, 예전에는 사주라고 불렸던,
하서 회랑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둔황 막고굴은 천불동(天称洞)이라고도 불리며 정교한 벽화와 조각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내용이 풍부한 불교예술의 성지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4대 석굴 중 하나다.
둔황의 서쪽은 넓게 펼쳐진 고비사막으로, 청회색의 자갈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끝없는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망망한 옛 성지처럼 맑은 하늘 아래 솟아오른 바위기둥과 암구가 황갈색의 겉모습과 선명한 퇴적층 절리를 드러내며 고비사막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유명한 둔황 마귀성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아단국가지질공원이다.
아단 마귀성에서 세계건축예술박물관에 들어선 듯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대자연의 걸작들은 기묘하기 그지없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 곳은 따스하고 차며, 스스로 소리를 내서 마치 신이 있다고 전해져
내려 온다. 이 한 편의 영경시는 명사산의 기이한 풍경을 그려냈다.
이 생생한 풍경시는 둔황 명사산의 기이한 풍경에 대한 당대 시인의 묘사이다.
이 사베이의 작은 성에서 둔황 월아천은 한 줄기 신기한 샘으로 예로부터 신을 전한다는 기록이 있다. 둔황에서 전해 내려오는 책 중에서는 "명사산에는 우물이 있어 모래밭을 덮을 수 없다.” 라고 말한다. 이 사베이의 작은 성에서 둔황 월아천은 한 줄기 신기한 샘으로 예로부터 신을 전한다는 기록이 있다. 둔황에서 전해 내려오는 책 중에서는 "명사산에는 우물이 있어 모래밭을 덮을 수 없다.” 라고 말한다.
모래성이 우레와 같이 울리고 소리가
수십 리를 울림에도 불구하고 명사산의 월아천이 물에 잠기지 않고 여전히 맑고 푸른 달의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는 것을 보면 신이 보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곳에서는 진기한 구경도 하고, 신나게 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옛 복장을 입고 카드에 당신만의 사베이 사막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 긴 댕기,
넓은 소매, 자귀나무 저고리, 담황색 비단의
치마, 자줏빛의 비단 직물은 마치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져 그림 속 세계 같다.
‘오랑캐의 피리는 왜 이별의 곡 ‘절양류’만 부는가. 옥빛은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데’이 한편의 시 《양주사》 는 옥문관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황하가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가니, 외로운 성이 만개한 산이다. '오랑캐의 피리는 왜 이별의 곡 ‘절양류’만 부는가, 봄빛은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데. '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이 '양주사 '는 옥문관가에게 알려져 있다. 한 때 낙타 방울이 유유히 들려와 상인과 여객들이 끊이지 않아 한때 번성하였다.
시에서 묘사한 황량함과 근방을 지키는 병사의 향수는 향수를 이기지 못해 애원하지만, 그러나 국경을 지키는 일도 책임이 있기에 아쉬운 감정은 없다.
옥문관은 간쑤 둔황에 있고, 천하구관의 하나인 한무제 때 서역을 나와 실크로드를 개통하였고, 하서사군에 옥문관을 설치하였다고 하여 서역과 전하였다. 지금도 낡은 외벽이 남아 있고, 황사가 하늘에 가득하고, 천년을 지나는 바람과 빗발치는 모습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마치 풍상을 다 겪은 노인처럼, 묵묵히 앉아 천년을 넘나드는 독특한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그대여, 이 내 술 잔 비우고 가시구려, 먼 서역 길 나서면 아는 이도 드무니.' 이 <위성곡> 한 수는 양관의 이름을 천하에 알렸다.
‘그대여, 이 내 술 잔 비우고 가시구려, 먼 서역 길 나서면 아는 이도 드무니.’ 당나라 왕유의 《위성곡》은 양관을 이 때부터 마음속에 뿌리내린 정이 되어, 우리는 어찌됐든 높은 산과 자갈 사막을 넘어 차를 몰고 가서라도 가도록 만들었다.
양관은 옥문관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양관이라고 한다. 양관은 한무제가 원정 당시에 건설된 것으로 하서구의 열사군은 양관 중 하나이다. 양관은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이자 실크로드 남도의 중요한 관문으로 고대 병사들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사료에 따르면 서한시는 양관도위지방 관청을 만들었고, 위진 때는 양관현을, 당나라 때는 수창현을 설치하였다. 송원 이후 실크로드가 쇠퇴하면서 양관도 점차 황폐해져 '양관이목'이라 불리는 돈돈산 봉수만이 자갈 사막 위에 세워졌다.
관광객들은 이 생애에 꼭 한 번 둔황에 와서, 바람이 큰 사막의 고비에서, 천 년 동안 불면서, 막고굴의 신앙을 보고, 모래와 샘의 양쪽 곁을 서로 지키고, 옥문관에 봄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한당이 있던 것을 보면서 이 곳의 놓쳐서는 안될 풍경들을 감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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