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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둔황문화재 진품] 행각승 (Travelling Monk)2020-02-25 12:40:05
작성자 Level 10



명칭 : 행각승(Travelling Monk)


일련번호 : 1919,0101,0.168(Stein painting 168)(Ch.00380)


시대 : 9세기


크기 : 높이 41.0cm 너비 29.8cm


소재 : 페이퍼 페인팅


현재 소장 장소 : 대영박물관의 이 '행각승'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소장 번호는 Ch.00380, 높이 41.0 cm, 너비 29.8 cm, 시대는 9세기이다.

종이책에 그려진 이 행각승의 모습을 보면, 높은 코와 깊은 입, 약간의 입과 큰 삿갓을 머리에 쓰고,

왼손은 삿갓을 잡고, 오른 손에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 노란 바탕에 도트무늬 짧은 승복을 입고 있다.

경권을 가득 메운 대나무를 등에 지고, 죽봉이 손에 향로를 걸어주고, 행각승의 오른편에 있던 맹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행각승 앞에는 구름을 타고 온 붉은 색의 여래상이 그려져 있고, 화면 왼쪽에는 난간이 있지만 아무 글자도 기록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길미박물관에는 이 같은 종이책과 비슷한 행각승 그림이 소장돼 있는데, 일련번호는 MG.17683, 9세기, 높이 50.0 cm, 29.0 cm 의 종이책이다.

 

 


이 두 가지 종이본착색의 행각승은 형상이 매우 유사하며, 본체 이미지, 화면구도, 화폭 사이즈,

리고 착색으로 보아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이러한 부적 보호 기능의 종이본행각승 그림이 당시에 이미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행각승의 이미지는 중국 회화사에서 한때 유행했던 것으로, 이미지사에서 전형적인 의미를 지닌 유형이다.

현재 만나는 최초의 행각승은 서안 흥교사 장석각화인 '현기법사상'으로, 앞의 한승은 법의를 입고, 오른쪽 손에는 털고, 왼손에는 경지를 잡고 있다.

당나라 화사는 이런 그림을 다루면서 '행승', '행도승' 또는 '행각승'이라고 불렀다.


현예 스님은 당정관 3년 천축취경에 갔다가 정관 19년 장안에 돌아와 스님의 경적을 보여주는 '행각승' 그림이 장안으로 돌아온 뒤 상당 기간 유행했다.

화사에 따르면 '행각승'의 그림을 그린 유명한 화가는 한간, 육요, 오도자, 이과노, 저우위 등이며,
현종개원(713)에서 덕종건중(780)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화가가 그린 그림은 지금까지 산실되어 있어 당시 행각승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당나라 화사에 기록된 행각승은 아직 백호가 함께 없고, ‘보승여래'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았다.

둔황 막고굴 벽화와 장경동의 유화에는 전술 흥교사 행각 승상과 유사한 불교 사적 그림이 있는데 유일하게 둔황 벽화와 유화에 나오는 행각승의 모습이 있다.

어떤 종이책 페인팅 행각승은 왼쪽 전방에보승여래', '남무보승여래'라는 제목을 올리기도 했다.


왕혜민 선생의둔황화 속의 행각승도신탐'이라는 글에 따르면 이 같은 그림은 현재까지 20점이며,

둔황 막고굴 벽화에는 각각 306, 8점이 있다. 이 굴은 남북으로 향하는데, 전실의 동서벽이 세 칸이고, 중간에 각각 한 점씩 있다.

363, 이 굴은 동서로 향하며, 남북벽은 각각 화행승 한 몸으로 위 2굴은 약 11세기 전반에 그려졌다.

막고굴 45굴 앞문에 2점이 남아 오대를 묘사한다. 


이 중 막고굴 45 2점은 왕혜민 선생이 새로 발견했다. 둔황 유화에는 행각승의 소재 이미지가 공존하며

서역 미술 도판에는반호행각승'이라는 제목의 그림 10점 중 견화 2점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버시와 수집품 7. 이 중 3점이 길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소장번호는 EO.1138, EO.1141,MG.17683 이다 ;

또 둔황유서 4점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으며 일련번호는 P.3075, P.4029, P.4074, P.4518에 나와 있다.

윌리엄 스타인이 2점을 수집하여 현재는 대영 박물관 소장번호 Ch.0037,Ch.0380 에서 볼 수 있다.

일본 오타이 코즈이는 2점을 수집하였고, 현재 하나는 한국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다른 한 점은 일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 엘미타시 박물관에는 현재 1점이 소장돼 있다. 종이 책에 그려진 행각승의 이미지는 전술과 유사하며,  '보승여래불'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둔황 유화 중 길미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견화행각승 두 폭의 그림이 만만치 않다.

소장 번호는 EO.1138으로 9세기에 제작되어, 높이 79.0 cm, 52.0 cm 이다.

인도에서 가져온 석학이 호랑이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화면은 승려가 먹빛 물든 법의를 입고, 옷깃에 흰 색을 띠며, 맨발로 짚을 짚고 샌들을 신으며 몸을 잡고 있다.

스님이 짊어진 대나무가 화면의 큰 공간을 차지하고 두루마리 끝에 붉은 점으로 표시된 것을 보면 대나무 경내에 경권을 가득 싣고 무거운 짐을 지고 돌아오는 스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대나무의 후방에는 나무 기둥이 하나 있는데, 꼬리, 물병 등이 걸려 있다.

대나무 도롱뇽의 전방에 긴 띠를 단 황금 향로는 악수 추방과 모기 물림을 위한 것이었다.

특히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스님 위로 한 줄기 올라가는 구름이 있고, 구름단 상단에 작은 부좌를 한 채 연단에 앉아 있는 여래상이 그려져 있다.

여래와 같은 소재의 소형 판지 그림에는 흔히 등장한다. 화면 속 스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이었고, 굳은 얼굴은 행각승에게 가장 좋은 사진이었다.

이 그림은 섬세하고 안 색깔이 단아하며, 승의에 금니로 채묘하여 장경동의 견화에서는 드물게 행각승의 모습을 표현한 걸작이다.

또 다른 일련번호는 EO.1141, 9세기 말, 높이 82.0 cm, 55.0 cm 이다.


이 견화는 1908년 버시와 둔황에서 획득한 것으로 프랑스로 가져온 뒤 루브르 미술관 동양부에 보관돼 있다.

화면의 주요 이미지는 잘 보존되어 있고, 색채가 선명하고, 정성스럽게 그린 둔황의 견화 중 알짜이다.

긴 눈썹을 가진 장년 행각승, 왼손에 꼬리를 잡고 오른편에 용머리 지팡이를 들고 길을 걷는 모습이 그려졌다.

연한 빨강의 승계지, 검은 줄무늬의 담청색 원산 문양, 허리에 유리 물병 등 여행 도구를 걸치고, 등에는 대나무를 짊어지고, 대나무의 바깥쪽에는 경권, 바가지 등 여행 도구를 달았다.

화면은 긴 거리를 넘나들며 고개를 넘고 인도 구법취경에 이르러 이상화한 행각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 속의 행각승은 검은 장화를 신고 꽃이 피는 대지 위를 걸어 다니며 구름을 타지 않은 여래상을 대신하고, 행각승은 스스로 광을 띄우고, 지고 있는 죽창 위에 흰 연기가 한 줄기 있다.


화면 오른쪽 상단의 장방형 게시판에는 '보승여래의 한 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죽은 동생의 지구인 삼칠기일을 위해 공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비단에 그려진 두 행각승의 형상을 보면 화사는 몸체 형상에 대해 비교적 크게 그리고 회화 기법이 능숙하여 공양품 중 높은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행각승의 룬랑과 의문선을 정교하게 그려 색칠한 후 엷게 물들이고, 주실로 피부선을 재도색하고, 중요한 점은 금박을 입히고 장식하는 표현기법과 함께 뒷면을 붙인다.

위에서 서술한 네 가지 행각승 그림을 종합해 보면, 종이책과 견본에 그려진 행각승 그림에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

우선 견본의 행각승은 산과 달, 꽃이 있는 길을 걷고, 종이책의 형상은 견본의 몸놀림과 같지만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음으로, 종이책 회화에서는 행각승의 왼쪽 전방에도 구름을 타고 오는 여래상이 나타나 견본여래상도 마찬가지로 정교하게 그려졌지만,

자세히 보면 둘 사이에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

본채색행각승도의 여래상은 행각승의 뒤에서 몸 앞으로, 견본여래상은 그 위에 타고 있는 구름 끝이 행각승의 눈앞에 떠오른다.

셋째, 견본이 그린 행각승은 삭발한 승려의 형상인 반면 종이책으로 그린 행각승은 여행용 대삿갓을 머리에 쓰고 삿갓 끈을 목덜미에 단단히 매고 있다.

이 밖에도 종이책과 견본화면에는 왼손에 꼬리를 잡고, 오른쪽 손에 나무 지팡이를 들고, 뒤에서 메고 있는 대나무, 그리고 뒤에 매달린 향로 등 세부 표현을 보면 차이가 많이 드러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점이 바로 10폭의 종이화가 공유하는 특징이다.

회화 기법이나 재질로 보아도 텍스쳐가 두꺼운 종이에 직접 붓글씨로 기고한 뒤 간단한 착색, 본도행각승의 높은 코와 깊은 눈, 입이 약간 벌어진 등의 특징이 있다.

행각승의 오른편에 있는 맹호는 노안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넓은 입과 이빨로도 구름을 타고 걸으며, 화면의 맹호의 선홍구, 행각승의 붉은 입, 그리고 구름 위에 올라타는 여래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바로 발승의 신분에 대해 약간의 토의를 해 보면 이해가 더 쉽다.

다음 두 점의 장경동지화, 현재 소장 러시아 엘미타시 박물관, 판본에 그려진 각승의 그림이 전작 Ch.00380과 유사하며 유일하게 다른 점이 바로 이 판본화의 제목이다 

또 다른 종이 그림에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되어 있는데, 번호는 P.4518, 전편과 이미지가 비슷하고, 남무보승여래불이라는 제목도 있다.

 


왕혜민 선생은 '돈황화의 행각승도신탐'이라는 제목의 '보승여래'와 보승여래 신앙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

1. 중국 고대의 보승여래신앙은 행각승도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다.


2. 관련 자료는 티베트 회화의 다모도로가 중원의 유명한 거사이며, 왕혜민 선생은 이를 화엄경론의 저자인 이통현으로 보고 있다.

이통현의 거사 신분, 호랑이와 짝을 이룬 경력, 이통현상이 널리 유행했던 점 등은 티베트 회화의 달마도로상을 잘 보여준다.

티베트에 들어갈 때 화엄신앙으로 혼동했던 또 다른 명인 화엄삼조 법장(달마도로)의 이름은 한지유행 과정에서 승려의 이미지로 혼동되기도 했다.


3. 이통현상은 불교사적화로 전하는 과정에서 보승여래신앙, 법장 등의 요소를 흡수해 화폭에 변화가 많지만 호랑이를 동반하고 배낭을 메고 먼 길을 걷는 주요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왕혜민 선생은 처음으로 둔황화의 행각승상과 티베트 회화의 다모도로상을 이통현상으로 정하고 앞사람의 기초 위에서 행각승상의 해독을 깊이 하는데 일조했다.

둔황화 속 행각승의 캐릭터와 정체의 수수께끼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