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알림

제목한대(汉代)부터, 옥문관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을 향수에 젖게 한다2020-01-08 16:48:23
작성자 Level 10


사람들은 둔황을 떠올릴 때, 종종 막고굴만을 떠오른다고 말한다.

사실, 둔황의 위대한 문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웅풍에서 위진풍류, 성당번화에서 5대풍운에 이르기까지,

이 천년웅관은 실크로드 문명의 융합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변색시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대당시인들에게 고향과도 같은 이 곳을 두고,

왕창령은 푸른 바다 긴 구름 설산을 가리고, 외로운 성채에 올라 아득히 옥문관을 바라본다.” 라는 서글픔을,

이백의 바람은 몇 만 리를 날아 옥문관에 불어닥친다는 호방함을,

장삼은 옥문관성은 현저히 높고 외로우며, 사막 만리의 모든 풀들이 시들어간다라는 처량함으로 각각 나타냈다.


한대부터 옥문관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반초는 "신은 주천군을 바라지 않지만 옥문관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개탄한 바 있다.

'옥문관(玉門門)'을 언급하면서부터 이 지명은 더 이상 종이에 쓰인, 평면적인 글자가 아니라 입체적이 되었고,

머리 위에는 고향으로 되돌아가고픈 열망이 맴돌고 있었고, 씻을 수 없는 향수가 되어 버렸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옥문관을 볼 때 먼 훗날을 생각하며 향수를 품게 된다.



옥문관(汉門开通)은 한무제가 서역도로를 개통하고 하서사군을 설치할 때 서역이 옥석을 깔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옥문은 중국의 여러 난관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부여된 가치의 이미지는 무시할 수 없다.

옥문관을 전하는 시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왕의 변방의 그 천고의 명편인 '량저우사'이다.

세상사가 아무리 변함없다 해도 변하기 마련이다.

"황하가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가고, 외로운 성이 만개한 산이다.

강피리는 왜 수양버들을 원망하고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기지 않는가"라는 노래로 저마다의 옥문관을 만들었다.


유구한 역사의 침전과 역대 문인의 시와 가곡을 가미한 옥문관은 한무제가 처음 설치한 중국 실크로드의 중요한 관문으로 중국 고전 시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천 년 후, 시가의 아름다움과 전쟁의 용맹은 서로 보완하여 눈부시게 빛난다. 옥문관 뒷면으로 돌면 흙 층이 얼룩져 있다.

얼떨결에, 당신도 아마 몇몇의 말들이 휙 소리를 내며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의 갈기는 바람 속에서 사냥하고 눈은 매우 날카롭다.

역사의 유적이나 먼지로 땅속에 잠겨 있거나 자연에 침식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관광객들을 꿈에서 깨어나게 하고,

 옥문관을 읊을 때마다 모든 사람의 눈앞에 황사가 가득하고, 고성이 하늘로 솟구친다.

옥문관은 오늘도 더 많은 수수께끼들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다.